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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Story in music

기억해줘, Episod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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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줘 (Feat. 김은지) | 작사/곡, 편곡 : 안재훈

기억해줘 Episode #1을 먼저 읽어 주세요.

'두두두두두~ You've got mail~'

K모 통신사로 옮긴 뒤로 부쩍 늘어난 스팸 메시지 때문인지
'또. 스팸 메세지인가?'라고 짜증섞인 투로 혼잣말을 내뱉으며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저기 CD 안 주시면 신고할 거예요!"

메세지만 봐도 그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괜히 웃음이 났다.
예전에 인연인지, 우연인지 모를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 만남이 생생하게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겉모습은 되게 성숙한 이미지였는데 처음 받은 메세지가 이런 애교가 한가득 담긴 메세지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그 앳된 얼굴 때문인가?
꽤 이런 애교있는 메세지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안 좋은 일이 많이 겹친 탓에 마음이 조금 지쳐있었는데 메세지 하나에 다 풀리는 느낌.

이렇게 나오는데 답장을 보내지 않을 수는 없으니
"법대로 합시다 그럼. -_-" 이라고 짧고 간략하게 보냈다.

메세지가 전송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가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해서 그런지 발신자의 번호가 뜨며 울리는 전화를 바라보고 있으니
괜히 또 가슴이 두근거린다.

흠흠. 괜히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고 심호흡을 크게 한 뒤에 전화를 조심스레 받는다.
"여보세요~"

"저기, 법 말고 밥으로 합의 보시면 안 되겠어요? 밥 한 끼 사드릴테니까 CD 주세요~"
낮지도 않은, 그렇다고 높다고 할 수 없는.
하지만 딱 그 사람의 이미지에 맞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차분한 음색의 목소리.

"아~ 농담이예요. CD 하나 드리는데 무슨 밥까지.. 바쁘실텐데 괜찮아요. 그냥 시내 들리실 때 연락주세요
시내랑 가까운 곳에 살아서 연락 주시면 30분 내로 배송해드릴 수 있어요."

아오~ 내가 말을 해놓고도 뭔가 아차 싶었다. -_-;;
사준다는 걸 왜 거절을 했지? T^ T
그 밥은 둘째치고,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날려보내버리는 거잖아. 흑~
이노무 생각없이 툭툭 질러대는 입이 원망스러웠다.

"아녜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어요. 대신, 만드신 다른 곡들도 CD에 담아서 주시면 되잖아요."

오~ 뭔가 나이스? -_-!
"그래요 그럼, 제가 시간을 맞춰드릴테니까 괜찮으실 때 연락을 주시면 돼요." 라고 대답했다.

"저기..."

"네~ 말씀하세요."

"오늘은 시간이 안 될까요?"
헉.. -_-;; 아니, 그래도 그렇지 뭔가 준비를 하고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은 좀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안 될 건 없는데 제가 지금 무방비 상태로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릴텐데 괜찮으세요?"라고 했더니

"괜찮으니까 천천히 오세요. 전에 처음 뵀던 그 바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나갈게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짧은 통화는 끝이났다.

시간의 여유가 좀 있긴 했지만 마음이 점점 급해진다.
아직 CD도 안 만들어 놓은데다가, 설마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생각도 안 했으니 씻지도 않은데다가
시내까지 나가는데 어느정도의 시간도 걸리지, 마음의 준비도 안 돼 있지,

일단 CD부터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전에 분명히 만들어 놨던 CD의 인덱스 파일을 어디다 저장을 해뒀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아서 한참을 헤매다 간신히 찾아서 CD 제작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는 급하게 비어있는 CD를 찾는다.

전기 면도기를 켜 면도를 하면서 CD가 완성되길 기다리다 완성된 CD를 꺼내어 케이스에 넣고
표지를 접어 케이스의 앞 면에 살짝 끼워 넣었다.

그 뒤에 대충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욕실을 나와 헤어 드라이로 머리를 말린다.
머리를 감아서 그런가?
처음의 그 급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옷은, 뭐 별로 고를 게 없다.
다만, 어느 청바지를 입고 나갈까 정도?
그냥 평소 즐겨 입던 남방에 날씨가 차니까 그냥 대충 두꺼운 점퍼를 하나 껴입고 나가는 수 밖에.
생각해보니 준비할 것도 별로 없잖아;;
'후~ 괜히 혼자 들떠서 쇼를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 도착을 하기 위해서 출발할 시간을 계산해놓고선 덜 마른 머리를 말린다.
머리를 말리며 가만히 거울 앞에 서본다.

'이 머리를 대체 어떻게 한담?'
생각을 해보니 스포츠 머리와 지금 하고 있는 머리 스타일 이외에 다른 스타일은 시도를 해본 적도 없었다.
스포츠 스타일이야 중학교, 고등학교, 군대 시절에는 교복처럼 '규칙'이었던 관계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쳐도
대학교 입학 후, 제대 후, 머리가 길어진 뒤에는 항상 보수적인 가운데를 기준 삼아서 양쪽으로 나눈 머리.

이놈의 센스없는 헤어스타일밖에 모르는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제와서 뭐 어쩌겠어;;
그냥 평소 하던 그대로 나가는 수밖에 없잖아?

출발 예정 시간이 되고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가 문을 잠근다.
잠긴 문을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 지하철 역에 도착, 지하철을 기다린다.

도착한 지하철을 타고 문 앞에 서서 옆으로 흘러가는 조명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성을 만나러 간다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만남이라는 것 때문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경험하는 가슴의 두근거림.
덜컹거리는 지하철의 바퀴 소리와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묘하게 같은 박자를 맞춘다.

약속 장소인 칵테일 바 앞에 도착.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서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가게 안으로 옮긴다.

두근, 두근.
발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심장 박동소리.

조심스레 문을 열고 가게 안을 살폈다.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재즈음악.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테이블의 여러 손님들.
그리고 "또 왔어?"라고 웃으며 맞아주는 가게 안의 바텐더 누나.

없다.

정작, 내가 찾고 있는 주인공은 없다.

음, 전에 봤던 그 스타일과 다른 스타일의 옷과 머리를 하고 있어서 못 찾은 것인가 싶어서
다시 한 번 가게 안의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없다.

실망, 허탈, 그리고 피곤함이 밀려온다.
잊고 있었던 허기도 한꺼번에.

바텐더 누나 앞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듯 앉았다.

"왠일이야?"라고 묻는 누나에게
"누나 보러 왔어요~"라고 뻔뻔하게 대답을 한다.

없는 걸 어쩌겠어.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체념이라는 것이 참 빨라졌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대며 '이런 걸 어쩌겠어'라며 체념하는 일.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보단 큰 단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없는 걸 어쩌겠어?'라고 생각하니 그냥 맘이 편해진다.

그래, 어쩔 수 있나?
그냥 누나와 또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누나, 전에 그 여자분 기억나요? 내 노래.."라고 물었더니

"아~ 그 분, 너 오기 한 5분 전까지 앉아있다가 전화 받고는 급하게 뛰어 나가시던 걸?"라고
누나가 대답을 해준다.

음, 바람을 맞은 건 아닌데 바람맞았구나.
아까 가게에 들어서는 그 길에서 멀찌감치 보였던 뛰어가는 그 사람이었나보다.

그렇게 누나와 대화를 나눈지 두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냥 집에 가고픈 생각이 들어서 자리를 일어났다.
배도 많이 고팠고.

가게를 나서는데 통로에서 눈에 익은 사람과 마주쳤다.

속으로는 화가 치밀었지만 뭔가 굉장히 어두운 얼굴빛을 보고는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아, 누나한테 들었어요. 기다리시다가 급하게 나가셨다고. 저기 이거 CD예요."라며
떠밀듯 포장된 사각 박스를 손에 건네주고선,
"저는 시간이 늦은 거 같아서 이만 들어가볼께요."라는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을 내뱉고는
대답을 들을 생각도, 틈도 없이 도망치듯 걸음을 밖으로 옮겼다.

'그럼 그렇지.'
괜히 혼자서 설레발을 친 건가?
찬 공기가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라고 하는 것 같다.

'웅~'
매너 모드로 해 놓은 휴대폰이 떨린다.

"저기 미안해요."라는 메세지.

생각해보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은 것도 아니고, 사람은 사람마다 그때 그때 사정이라는 게 있을 수 있으니까
아무런 말도 없이 대답도 듣지 않고, 사정 설명도 듣지 않은 채 CD만 던져주고 나온 내가 더 미안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나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온 것일 수도 있을테고.

그래도 어쨌든 두 시간여를 혼자 앉아 있다가, 다시 온 사람을 반갑게 맞아줄 자신은 없었다.
오히려 그냥 자리를 피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요 안 오신 것도 아니고 있다가 급하게 나가셨다고 들었어요."라고 답을 보냈다.
다음 메세지는 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고 옷을 급하게 벗어 던져놓고 침대에 누웠다.

인연이길 바랐던 걸까, 연인이길 바랐던 걸까.

이렇게 화가나고 짜증이 나고 하는 걸 봐서는,
어쩌면 인연으로 끝나는 게 아닌, 연인이길 바라는 너무 큰 욕심을 부렸던 것일지도.

'큰 욕심은 화를 부른다.'
그 '화'가 그 '화'는 아니겠지만
그래, 화를 부르긴 부르네.
엄청 화가 나긴 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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