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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Story in music

기억해줘, Episod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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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줘 (Feat. 김은지) | 작사/곡, 편곡 : 안재훈


구미 출장 건으로 대구에서 하루 신세를 지기로 한 친구의 부탁으로 구입한
속옷 세트를 들고 도착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다.

마지막으로 만난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항상 만나면 즐거운 친구.
반갑게 인사를 하고 포장이 된 상자를 건네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
그리고는 남자친구와의 약속이 있어 급하게 먼저 가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서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하는 친구의 뒷 모습을 가만히 쳐다본다.

"이따 한 11시쯤 보자~"라고 돌아보면서 큰 소리로 약속 시간을 정하고서는
다시 급하게 약속 장소로 뛰어간다.

약속 시간까지는 너무 많이 남아 있지만 집에 돌아가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는데다가
다시 혼자 있게 될 방으로 가고 싶은 만큼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혼자라는 게 익숙한 줄 알았는데 막상 또 혼자서 시내에 멍하게 서 있으니 더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때 문득,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칵테일 바가 떠올랐다.
얼굴을 비춘 지가 벌써 일 년쯤 지났나?
시간도 많이 남았고, 날씨는 면도날처럼 날을 세우고선 내 살점을 뜯어갈 것처럼 매섭게 추워지고
아직도 그때 일하던 누나가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발걸음을 그쪽으로 내딛는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리뉴얼 했는지 달라진 입구가 조금 낯설고 당황스러웠지만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낯익은 누나의 얼굴이 보인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나~"라며 구수한 사투리로 반겨주는 누나의 목소리에
왠지 그냥 시간 때우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 때문일까?
미안하단 생각이 앞선다.

이래 저래 그동안 못 했던 인사를 하고, 또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손님들의 주문 때문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서
그냥 혼자 조용히 앉아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릴뿐.

알콜이 들어간 칵테일을 마시면 온 몸이 당근처럼 붉어지는 걸 잘 아는 누나이기에
오랜만에 본 기념으로 새로 개발했다는 무알콜 칵테일을 서비스라며 한 잔 건넨다.
기분 좋게 받아들고선 그 향기를 느끼고 있는데 눈에 띄는 어떤 아가씨.

엄청난 미인은 아닌데 뭔가 자연스러우면서 상당히 앳된 느낌의 매력적인 외모와 생기 있게 적당히 통통한 얼굴.
그렇게 굵지 않은 컬을 넣은, 자연스럽게 뻗어 내린 긴 생머리에 피부가 비쳐보일 듯한 옅은 기초 화장.
크지는 않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선을 가진 눈과 긴 속 눈썹에 칠한 짙은 마스카라.
적당한 두께로 그려진 짙은 푸른색의 아이라인.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 입술 원래의 핑크빛 그 위에 옅게 펴바른 반짝이는 립글로즈.

내가 정말 좋아하는 화장 스타일이라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대충 대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 정도로 보였으니까 20대 초중반 정도의 느낌?

검은 색의 세련된 디자인의 의상과 긴 코트를 걸치고 칵테일을 앞에 둔 그녀가 종이에 무엇인가 적어서
그걸 바의 누나에게 전한다.

그 메모지를 받아든 누나가 나를 보며 피식 웃어보인다.
'-_-? 뭐지?'

잠시 후에 흘러나오는, 굉장히 낯익은 어쿠스틱 피아노와 일렉트릭 피아노가 레이어드(Layered) 된 전주 소리.
'응? 이거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라며 의아해 하는데
전주에 이어 곧바로 흘러나오는 은지씨의 목소리.

"얼래? 누나~ 이거 기억해줘 아니예요? 나 왔다고 내 노래 틀어주시는 거예요?"라며 웃는데,
그 아가씨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날 잠시 쳐다본다.

나도 뭔가 시선이 느껴져서 그쪽을 향해 시선을 옮기는데 눈이 마주쳤다.
어색함에 서로 고개를 잠시 돌리고 앞에 있는 칵테일을 한 모금 입 안에 담는다.

잠시 뒤에 그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저기, 방금 그쪽 노래라고 하셨죠?"

"네, 제 노랜데.."라고 딱히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 말 끝을 흐렸다.
그 대답을 듣고는 무언가 못 믿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비웃는 것인지 살짝 얼굴에 웃음을 띈다.

기분이 나쁘진 않는데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 노래를 내 노래라고 하는데 왜 웃는거지'라는 의문도 들고.

하긴, 나라도 어디서 나오는 노래를 듣도 보도 못했던 사람이 '내 노래다'라고 한다면 못 믿는 게 이해된다.
게다가 생긴 걸 봐도 음악이랑은 전혀 거리가 멀게 생겼으니, 웃기기도 하겠네.
키 작고, 뿔테 안경에 헤어스타일은 자유분방함과는 전혀 거리가 없는 보수적인 머리를 하고서는
"내가 이 노래 만들었다"라고 한다면 아무도 안 믿겠지. -_-;;

그렇다고 이 칵테일 바에서 내가 만든 노래라는 걸 어떻게 당장 증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쩔 수 없이 제 삼자인 누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누나~ 이 여성분이 안 믿는데 설명 좀 해주세요. T^ T"라고 간절한 눈빛을 담아서. -_-
그랬더니 누나답지 않게 의외로 순순히 "쟤가 만든 노래 맞아요~"라고 대답을 해준다.

그 말을 듣고서는 한 번 더 놀라는 눈빛을 보인다.
왠지 우쭐해지는 그 기분, 입 안에 머금은 칵테일이 유난히 달다.
마음 속으로는 승리의 브이를 그리며. -_-V 훗~

"안 믿기죠?"라고 물었더니 시선을 정면으로 옮기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댄다. -_-+
"하긴~ 저도 제가 이 곡을 만들었다는 게 안 믿겨요~"라고 했더니 재미있는지 미소를 머금는다.

"아까는 죄송했어요, 근데 저 이 노래 되게 좋아해요."라고 조심스레 입을 떼는 그녀.
대화의 초점이 노래에 대한 것들이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내가 정말 작곡을 하고 있는지, 가사는 직접 쓴 것인지 아니면 배낀 것인지(-_- )
곡은 어떻게 작업을 하고 있는지, 믿을 수 있느니 없느니 하는 그런,
상대방을 기분 나쁘지 않은 선에서 우습게 만들며 즐거움을 찾는 대화들과
노래에 대한 대화가 오간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갑자기 시작되는 그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

2년 전에 만나던 사람과 헤어졌다고 했다.
그녀도 처음엔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다고.
바쁘게 일을 하고 시간을 보내면 잊혀질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 기억들이 오히려
더 생생해져 마음이 아프다고, 그리고 눈물이 난다고.

어떻게 보면 듣는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또,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그런 비밀들인데 하나도 거부감이 없이 자연스럽다.
그녀의 섬세한 표현력과 풍부한 어휘들.
단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일 뿐인데 그녀의 아픔이 그대로 생생하게 내 가슴에 전해진다.

그렇게 그와 헤어지고나서 1년 후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듣게 된 은지씨의 목소리로 담아낸 기억해줘라는 노래,
처음엔 듣고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자기 맘을 너무나도 잘 알아주는 것 같았다고, 그 사람이 자신을 잊을까봐, 너무 쉽게 잊고 지낼까봐.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너무 똑같아서, 그 사람이 혼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생각하기 싫었다고.
그런데 가사가 자기 이야기를 복사한마냥 너무 똑같아서 놀라웠는데 노래를 들으면서 갑자기 미안해지며
눈물이 쏟아지더라면서.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고는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인다.

괜히 미안해졌다.
아픈 기억들, 잊으려 많이 애썼을텐데 내가 만든 노래 때문에 오히려 되살아나게 되어버린 게 아닐까하고.

"미안해요..."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

다시 살짝 웃으면서 답을 건넨다.
"아녜요. 오히려 되게 위로가 됐어요."라고.
웃는 얼굴을 보는데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뛴다.

'위로가 됐다.'라....

참 신기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환경에,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
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노래에 다른 사람이 똑 같은 느낌을 갖고 공감을 가진다는 것이.

"제가 들어본 노래는 기억해줘밖에 없는데, 혹시 다른 노래도 있어요?"라고 조심스레 묻는다.

"발라드밖에 못 만들어서 발라드 외엔 드물어요."라고 했더니 자신도 발라드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별에 관한 이야기밖에 없는데..."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그런다.

그래서 은파님의 영어가사 버전인 Since Long Ago 말고 출시는 안 됐지만 한국어 버전인
'이별 아닌 이별'을 휴대폰 MP3P의 리스트에서 골라 플레이를 시킨 뒤에

"별로 좋은 곡은 아니예요."라는 말과 함께 조심스레 건넸다.

"잘 들을께요."라는 말과 함께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듣기 시작하는 그녀.
한 1분이 조금 더 흘렀을까 갑자기 흐느끼며 눈물을 막 흘린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한다.

헉! -_-
뭐지?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다고!! T^ T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T^ T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여자를 앞에 둔 남자는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하지?'
'뭐라고 말을 건네며 달래야하지?'
도통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당황스럽고 황당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냅킨을 꺼내 그녀에게 건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후로 한 5분을 울었나?
미안하다면서, 술을 마셔서 그런지 오늘 되게 청승 맞은 거 같다면서,
냅킨으로 눈물을 지우며 여전히 훌쩍이는 목소리로 내게 연신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넨다.

그러고는 다시 그와 있었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사의 내용처럼 그는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는 남자였다고.
그걸 알면서도 시작한 만남.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진심이 그에게 전해져서 그의 마음 속의 빈 자리가 채워질 거라고 믿었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가 그녀를 사랑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마음의 빈 자리가 커져만 갔다고.
결국엔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듯, 이럴 바엔 그 사람에게 그만 돌아가라면서 그를 몰아세우듯 보내버렸다고.

정말 소설 같았다.
내 노래를 누가 대신 경험해주고서는 그 결과를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하지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 아픈 마음을 이토록 눈 앞에 보이듯 전할 수 없음을 잘 아니까.
그렇기에 내가 그 노래들을 쓸 수 있었으니까.

내 노래들이 많이 위로가 된다고.
나만이 이렇게 아픈 마음을 가진 게 아니구나라면서,
나 혼자만이 겪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고,

남녀가 만나는데 각각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 남자, 참 복도 많다는 생각이 들며 괜히 부러워졌다.
짧은 시간에 판단하긴 뭣하지만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참 매력적이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같은데.
휴~ 세상은 역시 불공평해. T^ T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조금 잠긴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고마워요. 잘 들었어요."

휴대폰을 돌려받는데 괜히 무안해진다. -_-;;

"혹시 CD있어요?"라는 질문에
"아~ CD는 따로 소량만 만들었어요. 디지털 앨범 형식이라서 지인들에게 좀 나눠주고.."라고 대답했다.
조금 실망의 눈빛을 보인다.

"필요하시면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라고 했더니
"기억해줘 꼭 한 장 주세요, 밥 한 끼 대접할게요."라며 한결 밝아진 얼굴로 싱긋 웃어보인다.

"아뇨~ 그럴 것까지 없어요."라고 답을 했지만
"기억해줘 말고 다른 곡들도 주셔야죠."라면서 이별 아닌 이별은 꼭 담아달라고 약속을 강요한다.

12시가 가까워오는 시간.
친구로부터 온 문자메세지를 받고서 난감한 표정을 나도 모르게 지었나보다.
표정을 읽었는지 오래 붙들고 있던 거 같아서 미안하다고 CD만들면 연락을 달라면서
내 전화기를 순간 빼앗아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다.

그리고 통화버튼을 눌러 내 번호를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한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길래 무심코 "환자예요."라고 대답했다. -_-;;

폭소를 터트리며 웃는 그녀.
그리고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밝힌다.

스물 아홉 살.
헉-_-;;;;;;;;;;

20대 초반으로 생각했다고 하니 "립서비스가 지나치세요~"라면서
은은한 조명에 반짝이는 입술을 꼭 깨물며 내게 핀잔을 주는 그녀.
그래도 웃음이 가시지 않는 걸 보니 내 립서비스에 기분이 좋아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친구에게서 재촉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내가 곤란함과 미안함과 아쉬움이 마구 뒤섞인 표정을 지었나보다.
실제로 마음이 그랬으니까.

다음에 꼭 한 번 더 보자며 밝게 눈웃음을 띄워 보내는 그녀.

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오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정말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맞나?'라고.

그게 어찌됐건, 나름대로 즐거운 경험이었고 뿌듯했다.
'내 노래를 듣고 공감하며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그래, 내가 이 맛에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처음에 가지고 온 그 꿀꿀한 기분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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